2021. 11. 14. 22:28ㆍ카테고리 없음
로겐펠더
:Rogenfelder
록펠러는 로겐펠더를 미국식으로 부른 이름이다
1차 세계대전 패배한 독일이 베르사유조약으로 인해
유전이 있는 식민지를 잃었을 때
세계의 석유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록펠러가 독일을
압박하고 있다고 판단했고,
후에 6백만 명의 유대인을 학살하는 배경이 되기도 한다.
존 데이비슨 라커펠러
:John D. Rockefeller
1839년 뉴욕에서 태어나 1853년 오하이오에서 자랐다
어려서부터 칠면조나 사탕을 팔아 이윤을 남기면서
돈에 눈을 뜨기 시작한다.
라커펠러는 1855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곡물위탁판매회사의 경리보조로 취직해
2년간 31달러의 급여를 받았다.
석유는 바위틈에서 흘러나온 기름이다
Petroleum(바위)+Oleum(기름)
당시 석유는 약국에서 상처치료 연고나
두통,치통 및 류머티즘 만병통치약으로 판매되었다.
조지 비셀의 유전 개발
월가의 전문 변호사였던 조지 비셀은
고향에 방문에 석유 샘플을 보고
연료로서의 가능성을 알라차리고
중국의 염정 굴착기 기술을 동원해
펜실베니아에 석유 회사를 세우는데 성공한다.
이제 더 이상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를
채굴하는 사업의 장이 열린 것이다.

라커펠러, 석유 쓸모를 입히다.
사용처도 불분명 한 석유 개발에
사람들이 몰두할 때
라커펠러는 쓸만한 기름으로 만드는
정유공장을 세운다.
석유는 채취한 그대로의 광유를 등화해 사용하면
매캐한 연기와 냄새를 발산하고 빛도 밝지 않았다
하지만 이를 증류해 정제해서 등유를 만들면
연기와 냄새가 적고 불빛이 밝아 인기를 끌었다.
그는 유전 개발에 뛰어 들기 보다
부가가치가 더 높은 정제공장을 차린 것이다.
라커펠러는 26살에 클리브랜드의 거부가 되어 간다.
1800년대 영국과 미국의 거리를 밝혔던
향유 고래 기름은 서시히 사라지게 된다.
무분별한 유전 개발로 석유 가격의 등폭락이
커지자 철도회사들은 석유 수송이 일정하게
이루어지길 바랐다.
라커펠러는 정유사업은 물류비용의 절감이
성공의 비결이라 생각하고,
철도회사에 일정한 원유 수송량을 보장해 주며
석유 운송료를 절감하는 협상에 성공한다.

라커펠러 스탠더드오일 설립
:Standard Oil Co.
1870-1911
스탠더드 오일은 석유의 생산,운송,
정제,마케팅 분야에서 다른 회사들에 비해
월등한 영향력을 가진 회사이다.
1870년 라커펠러는 동업자들과 함께
오하이오주의 클리블랜드에서 설립했다.
라커펠러는 스탠더드 오일을 통해
시장 독점을 위한 경쟁자들의 인수합병에 들어간다.
일명 ‘클리블랜드 대학살’로 알려진
3개월간의 인수합병 전쟁을 치른다
그는 클리브랜드에 있는 정유회사에게
경영권을 넘겨주고 주식을 배분 받든지,
독자적으로 운영하다 파산하든지
둘중에 하나를 선택해야만 했다.
클리블랜드 대학살로 뉴욕,필라델피아,피츠버그등
27개의 정유회사의 인수를 끝내고
창업한지 9년만에 미국 전체 석유의 95%를 독점하게 된다.

라커펠러 98년의 삶
53세가 된 해 병원을 찾은 그에게 55세를 넘기기
어려울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라커펠러가 젊어서 했던
많은 돈을 벌겠다는 이야기와
당시 수명이 55세 전후반이였을 때
100세까지 살겠다고 했다는데
이후 록펠러는 98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다.